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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령길 산행코스

우이동유원지 로터리(경찰 우이지구대 앞) → 우이동먹거리마을 길로 출발 → 우이령안내소(25분) → 우이령정상(25분) → 오봉전망대(10분) → 유격장석굴암입구(20분) → 석굴암(20분) → 유격장(40분) → 교현리안내소(30분) → 송추 교현리(10분)
[약3시간 소요]

우이동 유원지로터리에서 우이동먹거리마을 길로 가는 코스가 원래 우이령길이며, 우이령길은 소잔등 처럼 완만해서 어린가족이나 노부부 등이 부담없이 오르는 길이다.
우이동에서 송추(장흥 교현리)까지는 6.8km의 거리로 중간 중간에 마련된 쉼터에 앉아 북한산에서 서식하는 오색딱따구리와 곤줄박이 우짖는 소리, 쓰르라미 소리, 길가의 낙엽 쓸리는 소리가 어울려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북한산의 깃대종인 산개나리와 더불어 떡갈나무·단풍나무·물오리나무·신갈나무 등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저마다 색깔을 달리하며 그려내는 빛에 눈이 즐겁다.

  • 우이령길 등산하려면 사전예약 없이는 통행이 안됩니다.

  • 국립공원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접수 해야하며 65세 이상은 전화 예약도 가능함

  • 등산시 예약 확인증과 신분증을 반드시 지참하여야 합니다.

  • 산행시간은 9시부터14시까지 입산하고 입산후 당일 16시까지 하산하여야 합니다.

북한산 산행코스

우이동방면등산: 우이동 유원지로터리(경찰 우이지구대 앞) → 우이동먹거리마을길 → 우이령길 → 도선사 → 하루재 → 백운대

송추방면등사: 송추(장현 교현리) → 우이령길 → 도선사 → 하루재 → 백운대(4~5시간 소요)

북한산(837m)은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지리산을 한반도 5대 명산이라 불리우고 있으며, 북한산 최고봉인 백운대를 중심으로 인수봉, 만경대, 보현동 등 우뚝 솟은 암봉이 있어 독특한 매력을 준다.
또한 상장능선이란 북한산의 북쪽 솔고개에서 육모정까지 능선을 말하며, 솔고개에서 노고산으로 연결되며, 상장능선의 중간에 있는 우이령 갈림길에서 북동쪽으로 도봉산과 연결된다.

인수봉(仁壽峯)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고양시· 의정부시· 양주군 경계에 솟은 북한산의 주봉. 높이 811m. 백운대(白雲臺)· 만경대(萬景臺)와 함께 예로부터 삼각산(三角山)· 삼봉산(三峯山) 등으로 불리어 왔다. 화강암 암벽으로 이루어진 경승으로 동쪽 산기슭에는 우이동이 있고 남동쪽 기슭에는 도선사(道詵寺)가 있다.

○ 인수봉A코스: ‘공포의’ 전면 대슬래브로 첫 등반
- 1936년 10, 11월에 걸쳐 일본인 오우우치·오바·하마노와 함께 밑창이 두꺼운 등산화에 징을 박고 대슬래브를 올랐다

○ 인수봉B코스: 1935년 3월한국인이 연 최초의 암벽길
- 1935년 3월 20세의 김정태는 엄흥섭·김금봉, 그리고 일본인 이시이와 함께 인수봉 전면 벽을 올랐다.

○ 취나드A, B코스: 1963년 주한미군이 한국인과 개척
- 1963년 9월 주한 미군 이본 취나드는 선우중옥. 이강오와 더불어 인수봉 취나드 A와 B는 이들에 의해 태어난다. 이곳은 접근이 쉽고 자연스러운 라인과 적당한 난이도를 갖춰 산악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 코스이기도 하다.

○ 귀바위길 : 바위 천장의 푸르스름한 볼트 16개
- 고상돈이 에베레스트를 오른 1977년 9월, 고악산악회의 최중광·김남준·이종호·유광호는 선배들이 낸 길을 빼니 올라갈 만한 곳이 없어 인수봉 상단 한편에 버티고 있는 큼지막한 귀바위를 발견하고 귀바위길을 냈다.

백운대(白雲臺)

서울특별시 도봉구와 경기도 고양시의 경계에 있는 북한산의 최고봉. 해발고도 836m. 북쪽의 인수봉(仁壽峯), 남쪽의 만경대(萬景臺)와 함께 북한산 고봉 중의 하나이며 화강암의 험한 암벽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산마루는 1,000명 가량이 앉을 수 있는 암반이 깔려 있으며 기암절벽의 조망이 일품이다. 백운사지(白雲寺址)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절과 암자들이 주위의 수림과 조화를 이루는 데다가 등반코스가 계곡능선을 따라 사방으로 뻗어 있어 좋은 관광지가 되고 있다.

백운대(白雲臺)

도봉산(道峰山)은 서울특별시 도봉구와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양주시 장흥면에 걸쳐있는 산이다. 북한산 국립공원의 한 부분이다.
백두대간의 분수령에서 서남쪽으로 뻗은 한북정맥의 연봉을 따라 운악산·불곡산을 거쳐 남서쪽으로 내려오다가 서울 동북쪽에서 우뚝 솟아 우이령을 경계로 북한산으로 이어진다. 최고봉인 자운봉(紫雲峰, 739.5m), 남쪽으로 만장봉(萬丈峰)·선인봉(仙人峰), 서쪽으로 오봉(五峰)·여성봉 이 있다.

  • 1)

    산의 지리 : 우람한 기암괴석과 뾰족이 솟은 바위 봉우리들이 장관이며, 사방으로 뻗은 계곡을 따라 녹음이 우거져 있다.

  • 2)

    등산길 : 면적은 24㎢로 북한산의 55㎢에 비해 등산길이 더 조밀하다.

  • 3)

    가볼 만한 곳 : 최고봉인 자운봉(739.5m)을 비롯해서 만장봉·선인봉·주봉·관음봉·오봉·우이암 등 암벽이 아름답다.

북한산성

지정번호 사적 162호 소재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산 1-1외
서울특별시 은평구·성북구·강북구·도봉구 일원
제작시기 백제 개루왕 5년 (서기 132년) 1968년 12월 5일 지정

북한산성 대서문(大西門) 북한산성 북문(北門) 북한산성 대성문(大城門) 북한산성(北漢山城)은 북한산에 쌓은 산성이다.
옛날 고구려와 백제의 쟁탈 중심지가 되었다. 백제는 대방군(帶方軍)의 옛땅을 합쳐버리고 차차 북방에 쳐들어갈 때 132년(개루왕 5년)에 이 성을 쌓았다. 그러나 고구려의 광개토왕은 백제를 공격하였고, 광개토왕의 아들 장수왕은 이 성을 포위하여 함락시키자 서울 지방은 고구려의 북한산주로 예속되었다. 뒤에 신라가 점차 국력이 강해져서 이 지역에 진출하였는데, 진흥왕이 북경 관내(管內)를 순시하였을 때 북한산의 순수비(巡狩碑)를 건립했다. 비는 현존하며 비가 있는 일대의 산은 비봉(碑峰)이라 부르고 있다.

고려는 도읍을 개성에 두었으므로 북한산을 중요시하지 않았다. 조선 초기에도 처음은 그다지 주의를 끌지 않았으나 선조 때의 임진·정유의 왜란과 1636년(인조 14년) 청 태종이 쳐들어온 뒤부터 피난의 적소로서 매우 중요시되었다. 그러나 성은 쌓지 못하였다.

이 축성이 가장 대규모로 이루어진 것은 1711년(숙종 37년)이다. 이보다 앞서 1659년(효종 10년)에 왕이 송시열(宋時烈)에게 명령하여 북한산성을 수축하게 하고 임란이어처(臨亂移御處)로 하여 도성의 근본을 견고하게 하라는 하교(下敎)가 있었다. 이때부터 이 성의 축성이 누차 논의되긴 하였으나 1702년(숙종 28년) 우의정 신완(申玩)이 강화도·남한산성은 비상시에 의지할 지대가 아님을 극론하였고 이후로 여러 신하들과 수차 상론하는 바, 먼저 기지(基址)를 시찰시키고, 여러 신하들에게 방안을 의논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1704년(숙종 30년) 음력 10월 훈련대장 이기하(李基夏)와 어영대장 김석연(金錫衍)으로 하여금 북한 축성의 가부를 가서 살피고 오라 하자 이기하는 돌아와 보고하기를 험하기가 남한산성은 비할 바 아니며 도성에 가까운 곳에 있는 이런 형세의 지대를 버릴 것이 아님을 역설하였고, 여러 신하도 이에 동의하는 수가 많아졌는가 하면, 특히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이유(李濡)는 강력히 이를 지지했다. 그리고 총융사(摠戎使) 김중기(金重器)와 사직(司直) 이우항(李宇恒)도 성의 터를 시찰하고 돌아와 찬성의 뜻으로 보고하자 1711년(숙종 37년) 음력 2월에 비로소 축성하기로 결정하고, 음력 3월에 축성의 착수를 명하니 음력 4월에 시작하여 음력 9월에 완료하고, 이듬해에 임금이 행차하였다. 이 산성은 전시에 임금이 거처하고, 만일의 경우 도성의 백성도 수용함을 목적으로 하여 축조하였다. 성의 둘레는 7,620보(步)이며, 문(門)은 14개, 장대(將臺)는 3개, 곽성(郭城)은 26개, 우물 99개가 있었다.